생각하는지성 2022. 5. 13. 18:31

운동은 삶의 수준을 고양한다.



최근에 생산성 있는 활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는 것은 의외로 나 자신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했다. 특히나 목표를 설정해두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이. 문제를 자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내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것은 잘하지만,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이번에도 그 경우였다. 운동도,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인터넷을 서핑했다. 인터넷엔 내가 소비하기 좋은, 시간 쓰기 좋은 측면에서의 양질의 콘텐츠가 많았다. 악동뮤지션의 <라면인건가> 가사에 나오는 말처럼,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넘어가고 새벽에 이를 때까지 놀 때도 많았고, 심지어는 학교 가기 전에 날을 샌 적도 있었다.

이런 생활에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이고, 아무런 결과 없이 시간만 보낸다는 사실에 정신적인 피로가 급증했다. 노는 동시에 편하지 않았다. 놀고먹기만 하면 편하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놀랍게도 뇌를 쓰며 애쓰지 않을수록 불편한 마음만 커졌다. 사이버 캠퍼스 상에 듣지 않은 강의들이 스택처럼 쌓여갈 때, 사놓고 공부하지 않은 책들을 볼 때면 애써 외면하고 싶어졌다. 문제를 자각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회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인터넷에, 미디어에 빠져든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잠자기 전이나 씻을 때와 같이, 어쩔 수 없이 문제를 마주할 때면 생각과 감정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내 문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계획 세웠다. 그런데도 나는 작심삼일이라는 표현을 작심삼초로 고쳐 쓰고 싶어질 정도로 그 계획은 전혀 실행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기를 며칠째, 결국 PT 날이 찾아왔다. 오늘도 가기 싫었는데, 24시간 이내 취소하면 그 기회는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갔다. 오늘은 PT를 받기 전에 인바디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저번 달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살과 근육을 찌웠고, 지방은 감소시켰다. 그러나 이번 달엔 식단과 생활패턴이 무너졌다. 저번 달에 열심히 노력했으니 이번 달엔 설렁설렁해도 될 거라는 은연중의 마음이 든 걸까, 운동 의지도 사라져갔다. 인바디 점수를 2점만 더 올려보자고 저번 달에 다짐했던 나는 이번에 그 점수를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떨구고 말았다. 최근에 팔근육이 줄어든 것 같다고 체감했었지만, 몸의 변화를 수치화하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더욱 실감이 났다. PT 선생님은 "20년 동안 공부만 해왔는데, 한 달 바짝 하고 '아 열심히 했으니까 이번 달엔 좀 대충대충 해야겠다.' 이런 생각 하시고서 몸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 심보겠죠?"라고 말씀하셨다. 도둑 심보. 제대로 노력하지 않은 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말. 그동안 도둑 심보로 살아온 적이 많았는데, 그 버릇이 어딜 가질 않았다.

이렇게 처참한 성적표를 들고서 시작한 운동 공부였다. PT 선생님의 수업은 예전처럼 그대로였다. 길면서 짧은 듯한 수업이 끝나고 개인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온 이상 몸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보자는 생각으로 운동했다. 팔굽혀펴기를 계속하니 가슴 근육이 아팠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니 코어 근육에 자극이 가 배가 너무 아팠다. 그러면서도 버티고 버텼다. 내가 설정한 개수만큼 윗몸일으키기 하겠다는 생각으로 배가 아파도 참았고, 그렇게 내가 설정한 마지막 개수까지 해냈다. 러닝머신도 그렇게 달렸다. 오래 달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설정한 목표 시간까지 달리겠다는 단념으로. 그렇게 내가 마음속으로 설정한 목표를 이루어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 신기하게도 몸은 천근만근 피곤했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괜히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여태까지 못 챙겨왔던 다른 사람들이 떠올라서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한테 연락해보았다. 마침 그 친구도 이번에 수원으로 내려온다며 나에게 연락하려 했었는데 신기하다며 좋아했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마친 뒤에 상쾌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간 내기 어려운 친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서일까? 평소보다 호들갑을 떨며 그 친구와 대화했다. 마침 그 친구가 내려오는 내일 시간이 있었고, 그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 잡았다. 그 친구도 타이밍이 맞아 날 보려 했다고 했지만, 왜일까, 내가 먼저 연락해 그 친구를 보게 된 것 같아 천재일우를 따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운동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삶이 무기력했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게 된 운동은 생각보다 즐거웠고, 오늘 크나큰 활력을 불어다 주었다. 운동이 인터넷 서핑으로 얻는 만족보다 몇 배는 고상한 만족을 가져다준 것이다. 운동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운동하기가 싫고 두려웠는데, 이젠 내일도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예 손을 놓았던 내 할 일도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없었던 용기와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따뜻한 기분이 드는 오늘이다.



집앞에 핀 라일락! 이 라일락을 보면 아이유의 <라일락>이 떠오른다.
화요일의 하늘이었다. 몽실몽실 몽실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