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생각거리
요새 화물연대 파업이 난리다. 며칠새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 소속 화물 운송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 등을 내걸며 파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육상 운송에 의존하기 때문에 화물 운송이 멈춘다는 것은 곧 우리 경제의 혈관인 물류가 막힌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두고 언론사마다 입장(=프레임)이 꽤 다른데 이걸 살펴보는 것은 재미나다. 이번 글은 양정혜의 사회 갈등 의미 구성하기 논문을 참고하였다.
일단 프레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한 사건은 다층적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프레임은 사건을 일정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적 틀이다. 예를 들어,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갈등을 보도한다고 해보자. 이때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위 갈등을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갈등에 내포된 사건들-예를 들면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과만 협조하고 야당과는 협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도 or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정책 이행에 필요한 예산을 삭감-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 갈등의 맥락, 배경을 보도하는 것-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과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야당이 윤 대통령에게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두 가지 프레임 중에 하나를 택하고,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선택한다.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언론이 어떻게 이 갈등을 풀어내는지 살펴보자.
일단 정론: 모든 신문사들이 화물연대 파업이 큰 위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1) 정부의 이미지
한겨레나 경향은 정부 책임 프레임, 무능한 정부 프레임을 쓴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와 타협에 이르지 못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고수하는 등 강대강 대치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사태를 예견했음에도 잘 대응하지 못했고,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인다.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정부의 해결책을 두고는 정부가 화물 운송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킨다고 한다(‘강제노역’ 시키면서 요건·절차도 듬성…업무개시명령 쟁점 셋 by 한겨레). "운수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이라 안전 및 처우개선 협상 대상으로 인정 못한다던 정부가 강제노동 카드를 꺼내든 것도 모순이다."라며 정부가 엿장수 맘대로 이들에 대한 정의를 바꾸는 모순을 비판하기도 했다(대화 전부터 대통령이 엄단 선언, 이래서 파업 풀겠나by. 경향신문)
“극소수 강성 귀족노조”“극렬행위자 배후 추적” 정부가 위협적 발언 쏟아냈다 by 경향신문
물류 파업에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노·정 파국은 피해야 by 경향신문
화물기사, 노동자 아니라며…‘운송거부=불법파업’ 법적 궤변 by 한겨레
화물연대 파업은 불법인가? by 한겨레
-> 한겨레와 경향은 화물연대와 강대강 매치를 이어가는 윤석열 정부가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조선일보나 매일경제와 같은 보수 - 자유주의 신문들은 화물연대 파업이 불법이므로 윤석열 정부가 불법 파업에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기를 바라는 모습이 보였다. [사설] 불가피한 업무개시명령, 노동·연금·교육 개혁도 좌우한다 by 조선일보와 윤석열, 민주노총에 돌직구 던지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향후 윤석열 정권이 비전과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냐 없냐 판가름난다고 본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력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일단 대화로 해결하자는 온건한 목소리도 있다. [사설]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원칙 지키되 ‘대화 통한 해결’이 먼저by. 동아일보와 업무개시명령은 불가피, 파업 장기화는 막아야 by. 중앙일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위 주장의 근거를 화물연대 파업이 가져오는 경제 혼란 및 피해에서 찾고 있다. 기존 경제 질서를 화물연대가 거부함으로써 경제계와 산업계에 큰 혼란을 가져오는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화물 운송을 거부하는 것은 물류 대란으로 이어졌다고 화물연대에 책임 프레임을 씌운다. 경제를 볼모로 잡느냐는 도덕성 프레임도 유효하다. 2000년 의료분업 사태 당시 의사들이 집단 파업에 나선 것을 두고서 언론(보수 언론인지 진보 언론인지는 정확하지 않음)은 국민 목숨을 볼모로 잡냐, 공익을 저버리고 사익을 추구한다는 도덕성 프레임을 사용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보수 언론들은 특히 화물연대가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고 프레임을 사용한다.
-> 조선일보나 매일경제 등 보수 신문들은 화물연대가 파업으로써 경제적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법과 제도로써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화물연대에 대해서
화물연대의 이미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화물 운송자의 법적 정의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 시행령에 따라 9개 직종(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기사)이 인정받는다(박은정, 2018). 이 개념은 이들이 자영업자 성격과 근로자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어 노동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이들에게 법적 보호를 마련하고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고,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겨레나 경향은 이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한 파업을 하고 있다고 본다. 경향은 이들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신장하고자 노력하는 노동자들이 다름아니라 본다.
종합해보면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 신문들은 화물연대 쪽이 정당한 파업을 하고 있으며 파업을 끝내지 못하는 데에는 정부 책임이 있다고 본다. 반면 조선일보나 매일경제 같은 보수 신문들은 화물연대 쪽이 불법 파업을 하고 있으며 화물연대 쪽에 파업이 장기화되는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느 신문이든 이 갈등을 중재하려는 성격은 강하지 않다. 그저 사건을 있는 그대로 스트레이트 형식으로 내보낸다거나 한쪽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친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바람직한 해결책을 도출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 논문의 서론에서는 이런 상황을 비판하듯 언론이 갈등 중재자가 아닌 규제자가 되고 있다며 "언론은...(중략)바람직한 사회변동의 통로가 되기보다는 기존 질서나 권력집단의 옹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경향을 띤다"라고 언급하였다. 언론이 사회 통합과 갈등 중재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기존 연구들의 한계는 무엇일까? 이렇게 프레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말 최선의 방식일까? 등등... 간단한 생각거리들이 지난 며칠간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기사를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지만, 언론이라는 숲을 보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재밌는 주제이다.
참고문헌
박은정,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노동법적 보호, 월간노동리뷰, 2018
양정혜. (2001). 사회갈등의 의미 구성하기. 한국언론학보, 45(2), 284-315.
p.s. 자료조사를 원래 가볍게 하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기사들 엄청 읽게 돼서 시간이 많이 걸렸따.. 너무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