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기를 끄적인다. 누군가 그랬다. 자신의 내면을 말하는 매체로 적합한 것은 영상 매체가 아니라 글이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을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글만한 것이 없다.
올해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방황의 연속이었다. 내가 선택한 바가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밀고가지 못했다. 내일부터, 내일부터 하겠다고 다짐하는 미룸의 연속이었다. 이젠 일년 계획을 어떻게 세웠나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그렇게 여름 방학부터는 거의 되는 대로 살아온 것 같다.
먼저 편의점 알바가 있었다. 돈이 궁한데 더이상 부모님의 손을 벌리기가 싫어, 스스로 돈을 벌고자 선택한 결과였다. 편의점 알바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담배 종류를 외우는 것이나, 포스기를 찍는 것, 발주받은 물품들을 정리하는 것 등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하나만 하면 쉽겠으나, 멀티태스킹 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런저런 실수도 많이 했다. 큰 것들만 꼽자면, 계산한 5만원이 사라진 것과 술 박스를 나르다가 술을 깨뜨린 것이 있었다.
계약서를 쓰던 날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쓴 계약서는 보통 알바가 쓰는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인적용역계약서였다. 쉽게 말해 나는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된 사업자로서 편의점 점주를 위해 일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받거나 제도권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내가 손해를 입히면 배상 책임을 진다거나, 아예 대놓고 나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근로자의 권리-휴일 근로수당이나 연차 같은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간당 근무수당은 적확히 최저임금 기준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장도 내가 사업자가 아니라 근로자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모로 내게 불리한 계약서였고, 전화위복이라고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속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1
편의점 강제퇴사를 당하고 나서 2-3주 정도 시간을 무료하게 보냈다.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구직 활동도 해보았으나 번번히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면접 볼 기회를 얻었다. 매니저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일 못한다고 퇴사당했다는 내 얘기를 듣자 곧잘 공감해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훗날 깨닫게 된 것이지만, 매니저의 친절한 태도와 평판은 별개의 문제였다. 어쨌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쁜, 그러나 일할 사람들은 없는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첫 2주간은 손에 일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주방 쪽을 맡아 일하게 되었는데, 바쁠 때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모르는 게 투성이였기 때문에 먼저 들어온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들을 계속 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보였다. 주방에 있는 사람들이.
주방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내 또래 혹은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마음만 먹는다면 친해지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알바를 하러 가면 나도 모르게 입이 얼어붙었다. 말을 꺼내도 호구조사를 하는 게 대체적이었다. 그렇게 단답을 몇 번 받다보면 어색해져서 되려 내가 힘들어졌다. 주방은 보통 세 명이 일하는지라 세 명이서 끼리끼리 뭉쳐 있고는 하나, 나는 그 무리 속에 끼지 못하고 뒤에 서서만 있었다. 일이 바쁠 때는 그나마 시간이라도 빨리 가지만, 한가할 때면 정말로 정말로 무료했다.
'재민님은 혼자네요?' 라는 말로 내게 말 건 분이 계셨다. 혼자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다가와서 건넨 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러게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 말을 듣고나서 다시 혼자 있으면서(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과거에 혼자 있던 내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대로 그렸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나름 외향적이었다. 6학년이 되면서 친구 사귀기에 실패하면서 내성적이 된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나와 친해졌지, 그렇지 않다면 친하지 않았다. 자기변명을 해보자면, 언제나 누군가가 다가와주길 기대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을 주체적으로 사귀고 싶어 고등학교에서,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먼저 말도 걸면서 나름 시도했었고, 실제로 친해진 사람도 극소수이지만 있었다.
20살이 되어 교회 청년부로 갔을 때, 나는 지금과 같은 고민을 계속 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너무 무섭다'. 이 고민을 은사님인 전도사님께 털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를 미션으로 내주셨는데, 나는 용기를 내고서 하나 둘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비교적 수월했다. 그렇게 내가 다가간 사람들 중 깊게 친했던 한 분은 내게 그때 먼저 다가와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실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며 말이다.
교회 청년부에 좀 적응했을 무렵, 나는 이제 다가가는 것을 좀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조금 친해지고 나면 그뒤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귀찮았다. 먼저 연락하여 안부를 묻는 것도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던 것 같다. 만나도 할 말이 없으니 어색하여 먼저 자리를 뜨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먼저 다가가기를 하질 않았다. 그랬더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워졌다. 예배가 끝나면 친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근황토크를 하거나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가서도 소극적이 되었고, 누구도 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았음에도 소외감을 느꼈다.
대학교에 있는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 봄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동기들에게 일일이 카톡으로 인사를 돌렸다. 물론 매번 타자를 치는 게 귀찮아서 복사 붙여넣기를 하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덕에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 카톡으로 인사 돌린 애로 조금 유명해졌다. 그런데 작년 일련의 행사들에 참여하면서 동기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자 나는 다시 동기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정말 모른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점점 동기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지금이다. 그냥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다가가면 되는데, 내 스스로 벽을 만들어버린 느낌이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나는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귀는 것과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나름대로 적극적이던 때도 있었으나, 그 적극적인 모습은 꾸준하지 않았고, 다 쓴 배터리 마냥 방전된 것 같다. 결국 이렇게 자존감이 많이 추락한 상황이다. 내가 교회를 나가지 않기 시작한 큰 이유가 바로 여기, 대인관계에서의 위화감에 있다. 공동체 사람들과 친하면서도 친한 것 같지 않다고 단정지은, 이 복잡미묘한 위화감 속에서 벗어나려는 듯, 교회 사람들에게 아무 설명 없이 그대로 교회를 안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같은 논리로 대학도, 알바도 그만두어버리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의 방을 8-90%쯤 닫아놓은 셈이다. 그러나 흔히들 마음의 방은 스스로 열고 닫는 것이라 일컫는 것처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내 쪽에서 방문을 다시 열고 나가야 함이 틀림없다. 오늘 가입한 중앙동아리가 그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좀더 만나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시행착오를 통해 다시 배우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 내가 든 동아리는 학술분과이지만, 학술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유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교성을 다시 길러보려는 데 있으리라.
fin.
- 찾아보니까 중대한 손해가 아니라면 근로자가 실수로 손해를 내도, 사용자는 그 리스크마저 떠안고 간다는 이유에서 손해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더라. 사장은 내가 근로자가 아님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편법으로 계약서를 작성한 게 아니었을까? 물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고 통념상으로도 나는 사업자가 아니라 근로자가 맞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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